
신통력을 얻으면 정말 자유로워질까요? 요가수트라 3장을 읽으며 저는 오히려 반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통력조차 내려놓아야 진정한 자유에 이른다는 이 고대 경전의 주장은, 현대를 사는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3장 비부티 파다(Vibhuti Pada)는 초능력에 관한 장이지만, 역설적으로 능력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한 대상에 깊이 몰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가 신통이며,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집중이 만드는 힘, 삼야마의 원리
요가수트라는 집중(다라나), 명상(디야나), 삼매(사마디)가 하나로 이어질 때 이를 '삼야마(Samyama)'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삼야마란 세 가지 수행 단계가 통합되어 하나의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마음이 한 곳에 흔들림 없이 머물 때 나타나는 심오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의에서는 이 과정을 몰입 4단계로 설명했습니다. 1~3단계는 억지로 집중하는 단계이고, 4단계에 이르면 신바람이 나서 참나(Purusha)가 발동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듣고 제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집중할 때, 분명 '내'가 하고 있는데도 '나'를 잊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가 바로 참나가 작동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요가수트라는 특정 대상에 삼야마를 행하면 그와 관련된 지혜나 능력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주요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양에 집중하면 우주 구조에 대한 지혜 획득
달에 집중하면 별들의 배치와 운행 이해
배꼽 차크라에 집중하면 육체 구조 파악
목 차크라에 집중하면 배고픔과 갈증 제어
하지만 이것이 마술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經絡) 이론처럼, 인체 내 에너지 흐름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조절한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경락이란 기(氣)가 흐르는 통로를 의미하며, 요가의 나디(Nadi) 개념과 유사합니다. 결국 신통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을 깊이 이해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며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공중부양이 가능하다"는 문장 앞에서 마음이 멀어지더군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비유적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야의 달인이 보여주는 경지를 우리는 흔히 "신의 경지"라고 부르잖아요. 그렇다면 요가수트라가 말하는 신통도, 한 분야에 평생을 쏟아부은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숙련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초능력보다 중요한 것,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
흥미로운 점은 3장 후반부로 갈수록 신통에 대한 경고가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요가수트라는 "전지전능한 힘조차 집착하면 해탈의 장애가 된다"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가 철학의 핵심입니다. 힌두교 전통에서는 순수 의식인 참나(Purusha)와 물질적 작용인 프라크리티(Prakriti)를 철저히 구분합니다. 여기서 프라크리티란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물질이자 에너지를 뜻하며, 사트바(순수), 라자스(활동), 타마스(정체)의 세 가지 구나(Guna)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세계가 프라크리티의 작용입니다.
강의에서는 부띠(Buddhi, 지성)가 아무리 깨끗해져도 그것은 여전히 프라크리티의 영역이므로, 참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수행해서 얻은 지혜와 능력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뜻인가요?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일까요?
제 생각에 이 지점에서 인도 철학과 대승불교, 그리고 동아시아 사상이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인도 전통은 철저한 해탈, 즉 현상계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추구합니다. 반면 대승불교는 깨달음을 얻은 보살이 중생 구제를 위해 다시 세상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강의에서 소개된 화엄경 관점도 비슷합니다. 십지보살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지혜로 승화시켜 중생을 돕는 존재입니다.
해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관점에 더 공감합니다. 요가 수행을 통해 얻은 통찰과 능력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집착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과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제가 명상을 하며 느낀 건, 마음이 고요해질 때 오히려 일상이 더 선명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깊은 집중 상태에서 돌아왔을 때, 사소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감사함이 느껴졌습니다.
요가수트라가 제시하는 팔지칙(八支則)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성됩니다.
- 야마(Yama) - 해서는 안 될 행위 절제
- 니야마(Niyama) - 해야 할 행위 실천
- 아사나(Asana) - 바른 자세
- 프라나야마(Pranayama) - 호흡 조절
- 프라티아하라(Pratyahara) - 감각 통제
- 다라나(Dharana) - 집중
- 디야나(Dhyana) - 명상
- 사마디(Samadhi) - 삼매
강의에서는 이 중 마지막 세 단계인 집중, 명상, 삼매가 합쳐질 때 신통이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들조차 무종삼매(Nirbija Samadhi), 즉 모든 번뇌의 씨앗이 소멸된 상태에 비하면 외면적 단계에 불과하다고 경고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요가수트라의 진짜 메시지는 "능력을 얻지 마라"가 아니라 "능력에 머물지 마라"라는 것임을요.
요가수트라 3장을 읽으며 저는 수행의 진정한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통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한 호흡에 온전히 머무르려는 노력,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깊어질수록 더 놓아야 한다는 역설적 진리가, 어쩌면 3장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순간 느꼈던 자유로움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요가가 말하는 해탈 아닐까요.
출처: 윤홍식의 요가수트라 강의 7강-신통품(https://www.youtube.com/watch?v=m6V5J9UfL9g&list=PLaNHcYq59k3zk4NPbqnjvaPjT8d2Oi9r2&index=7), 원전주해 요가수트라 제3장